조선인 노동자들은 차별받았나?

아래 포스팅 (“식민지 조선은 커다란 노예농장?”) 에서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의 쌀값 격차가 일제시대 개막과 함께 큰 폭으로 떨어졌음을 보이고 이를 근거로 식민지 시대에는 강제되지 않은 쌀 매매가 이루어지는 시장이 존재했음을 주장했다.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목포) 임금 격차

위 그림은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또는 목포)의 비숙련 노동자 임금 격차가 일제시대에 꾸준히 감소해 갔으며 그 하락 추세가 1960년경까지 유지되었슴을 보여준다 (실선은 명목 임금, 점선은 실질 임금 격차를 나타낸다). 이는 임금이 싼 지역 노동자들이 비싼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저임금 지역의 노동 공급이 감소하고 고임금 지역의 노동 공급이 증가한 결과다. 이런 노동자들의 지역간 이동은 일제 시대 노동자들이 강제 동원되어 일한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위해 자발적으로 노동 서비스를 판매했음을 말해 준다.

강제되지 않은 고용 계약이 맺어지는 노동 시장이 존재했지만 그 시장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았을 수 있다. 즉 같은 능력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같은 임금을 받지 않았을 수 있다.

오늘 날에도 같은 학력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는 남자 사무직 노동자는 여자 사무직 노동자 보다 현저히 높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임금 차별(wage discrimination)은 남녀 사이 뿐 아니라 미국 같은 다인종 국가에서는 백인과 흑인 사이에도,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임금 차별은 사회적 편견, 정치적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다.

일제시대에 조선인 노동자 임금은 같은 직종에 속한 일본인 노동자 임금의 대략 40%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것만 보고 조선인 노동자들이 임금 차별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령 조선에 나와 있던 일본인 노동자들은 조선인에 비해 경험이 더 많고 훈련을 더 많이 받은 사람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받는 임금 수준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는지, 경험은 얼마나 있는지, 나이는 몇살인지, 근속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일제 시대에 민족간 임금 차별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인과 조선인 노동자 사이에서 관측된 임금 격차에서 민족 이외의 여러 다른 요인들 (즉 교육, 경험, 나이 등등) 때문에 발생한 임금 격차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도 남는 임금 격차가 있다면 비로소 조선인 노동자가 차별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일제시대 임금 차별에 관해서는 두 개의 중요한 연구가 나와 있다.

하나는 김종한이 1998년 경제사학에 발표한 “1928년 조선에서의 민족별 임금차별” 👉http://www.kehs.or.kr/xe/index.php?_filter=search&mid=journal&search_keyword=김종한&search_target=extra_vars2&document_srl=1487

다른 하나는 이우연이 2016년 경제사학에 발표한 “전시기(1937-1945) 일본으로 노무동원된 조선인 탄광부 임금과 민족 간 격차”👉http://www.kehs.or.kr/xe/index.php?_filter=search&mid=journal&search_keyword=이우연&search_target=extra_vars2&document_srl=17262

김종한의 연구는 나이 차이, 숙련 직종인지 여부, 노동시간 차이에 따른 임금 격차를 제거하고 나서도 조선인들은 조선에 들어와 있던 일본인들에 비해 적어도 37% 정도 낮은 임금을 받았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 연구는 (김종한 자신도 인정하듯이)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 중 일부만을 고려했기 때문에 임금 차별의 정도가 과대평가된 것인지 과소평가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우연의 연구는 이차대전기 일본 탄광에서 일한 조선인 및 일본인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격차가 있었지만 그것은 조선내 민족간 임금 격차보다 현저히 작았고, 근속 기간과 작업 능률 차이로 설명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일본 탄광에서 민족간 임금 차별은 없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 역시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중 일부만을 고려한 것이므로 임금 차별이 없었다는 결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일제시대에 조선인들이 임금 차별을 받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여럿 있는데 일본인과 조선인 노동자 사이에 그 요인들이 어떻게 달랐는지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불완전하고 그래서 그것들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종한이 임금 차별 차별 격차라고 계산해서 내놓은 결과의 상당 부분은 일본인 노동자들의 높은 교육 수준을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김종한이 분석한 데이타에는 각 노동자의 교육 수준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지 않다.

이우연이 분석한 이차대전기 일본 탄광에 일하던 일본인 노동자들은 노동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들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젊은 일본인들은 대부분 전쟁터에 끌려 갔기 때문이다. 이런 나이 차이에 따른 조선인 노동자들의 노동 능력 우위를 고려한다면 민족간 임금 격차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인들이 임금 차별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 이우연은 이 논문 내용을 반일종족주의 7장에서 간추려 설명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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