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화 성장

생산이 늘어난다고 반드시 소득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쌀을 수출하는 어떤 나라에서 쌀 생산이 늘어나자 그 영향으로 세계시장 쌀값이 폭락하면 이 나라 사람들의 소득은 감소할 수 있다. 이를 궁핍화 성장 (immiserizing growth)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일본 제국내의 안정적인 쌀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서 1920-34년간 조선에서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했다. 농민들에게 저리 자금을 빌려 주고 댐, 보, 수로 같은 수리 시설을 건설하도록 유도하고 화학 비료 사용도 권장했다. 그 결과 조선내 쌀 생산은 산미증식기간 동안 25% 정도 증가했다.

부산 (실선)과 오사카 (점선) 쌀가격

위 그림은 산미증식계획 시작해서 5년이 지난 1925년을 정점 기준 이후 6년간 쌀 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런 쌀값 폭락은 조선 농민들에게 큰 경제적 타격을 주었다. 특히 수리시설 건설을 위해 대출을 받고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농민은 큰 어려움에 빠졌다. 그래서 농민들 중에는 농토를 팔아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자작지가 전체 논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율

위 그림은 쌀값이 폭락하던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에 전체 논에서 차지하던 자작지 비중이 약 4% 포인트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식민지기 토지 불평등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증가했다.

산미증식계획은 궁핍화 성장을 가져온 것일까? 그렇지 않다. 쌀값이 폭락한 것은 조선의 쌀생산이 증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위 그림은 미국 밀 가격, 세계 시장 밀 가격도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에 조선 쌀 가격과 비슷한 폭으로 떨어졌음을 보여 준다. 이 시기에는 곡물뿐 아니라 고무, 면화 같은 원자재 가격도 폭락했다. 조선 쌀 가격 폭락은 전세계적인 농산품 가격 하락의 일부분이었는데 이를 세계농업공황이라고 한다.

세계농업공황이 발생한 것은 일차대전으로 파괴된 금본위제도를 재건하기 위해 주요 선진국들이 긴축 통화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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