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학회 회장 조장옥의 ‘친미파’ 경제사

아래 포스팅에서 내가 “허수아비 무찌르기”라고 조롱한 조장옥의 글은 산만해서 요점을 파악하기 어렵다.

조장옥의 글은 👇

http://home.sogang.ac.kr/sites/choj/economicdevelopment/Lists/b6/Attachments/9/(5)%EC%A1%B0%EC%9E%A5%EC%98%A5.pdf

근데 한번 더 읽어보니 조장옥이 하고 싶은 말이 무언지 대략은 알겠다. 그리고, 일제시대의 경제발전이 한국 고도성장의 원인이 되었다고 내가 주장했다는, 엉뚱한 얘기를 조장옥이 왜 지어냈는지도 알겠다.

조장옥이 하고 싶었던 말은 한국 고도성장이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도움으로 일어난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친미파 한국 경제사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이를 조장옥은 친일파 한국경제사라는 허수아비와 대비시켰다. 이를 통해 (보편화된) 반일 정서와 (경제학자들의) 친미 정서를 건드리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는 레토릭을 그는 구사한 것이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 대학에 취직했다).

내가 조장옥의 주장을 학문적 비판이 아니라 싸구려 정치 담론 정도로 취급하는 이유는 1) 상대방 얘기를 제대로 듣지 않을 뿐 아니라 2) 그가 대는 근거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며 3)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펴기 때문이다.

조장옥은 논문 37쪽에서 “해방과 전쟁을 통해 경제 발전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던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잔재가 대부분 제거되고 미군정 그리고 미군의 참전과 주둔으로 미국의 제도가 대거 유입되었다”고 하면서 이를 한국 고도성장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성장을 가로막았던 일본 제도란 구체적으로 뭔가? 해방후 도입되어 고도 성장을 가져왔다는 미국 제도란 또 뭔가? 조장옥은 이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해방 후 오랜 기간 식민지 시대의 일본식 제도 (예를 들어 사법 제도, 소유권 제도, 교육 제도, 호구 제도 등)가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서구의 제도는 아주 점진적으로 도입되었다 (Cumings(1981: 206-36)). 제도 변화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 관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급격히 일어나지 않는게 보통이다. 해방되고 미군정을 거치면서 일본 제도가 단기간에 미국 제도로 교체되었다는 말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게다가 조장옥은 미국 제도 도입이 한국 고도성장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바로 앞 쪽 (36쪽)에서 “제도는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말했다. 즉 제도 개혁만으로는 경제 성장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 뒤가 맞지 않는다.

조장옥은 37쪽에서 한국 고도 성장의 원인으로 “해방이후 교육을 통한 인적 자본의 축적”을 아울러 들고 있다. 미국 제도가 필요 조건이고 인적 자본 축적이 충분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인적 자본은 어떻게 해서 고도 성장을 일으키나?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하나는 인적 자본 투입이 빠르게 확대되어서 생산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물적 자본이나 노동 투입 증가가 빠르면 생산 증가가 빨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근데 해방후 인적 자본 축적 속도가 빨라지기는 했지만 이걸로 설명할 수 있는 해방 전과 후의 경제 성장율 차이는 크지 않다 (기아와 기적의 기원 5 장을 보라)

다른 하나는 인적 자본이 많으면 기술 개발이나 기술 학습이 촉진되기 때문에 생산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그런데 1960-90년간의 한국 고도 성장에서 기술 발전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물적 자본 축적이 핵심적이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한 마디로 해방 전에 비해 해방 후에 인적 자본의 수준이 높았던 사실이나 인적 자본이 더빨리 증가한 사실로는 한국의 성장 기적을 설명할 수 없다.

1945 이전과 이후에 제도적 환경이 별로 다르지 않았고, 인적 자본 수준이나 성장율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해방 이후 성장 가속화가 미미하므로 조장옥의 한국 성장 기적 설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거시경제학자가 이런 엉성한 글을 썼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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